[검정의 마음으로, 다시 나답게] 어버이날 그리운 아버지
죽음 같았던 색, 나를 다시 나답게 만든 색 - 검정의 심리 암흑에서 치유의 색으로.. 까만 하늘의 별은 나를 위한 별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블랙을 싫어했다.
그 색이 싫은 게 아니라,
그 색을 입지 말라고 말하던
아버지의 말이 너무 컸다.
“넌 키가 작아서 블랙은 안 어울려.”
그 말 한 줄이,
내 몸을 작게 만들었고
내 마음을 더 작게 만들었다.
모델처럼 멋졌던 아버지.
누구에게나 자랑스러운 존재였던 그 사람의 말은
내 자존감을 툭— 하고 눌러버렸다.
그래서 나는,
블랙을 피했다.
그저 ‘옷 색깔’이 아니라
‘부정된 나’ 같아서.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소리 없는 원망이 시작됐다.
그 원망은 대학 입시에서 더욱 짙어졌다.
수능을 망쳤지만
나는 서울에서
심리학, 철학, 사학과를 꿈꿨다.
내 내신이면 가능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세무학과를 고르라고 했다.
나는 숫자를 싫어했다.
복도에 주저앉아 울었다.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내가,
그날은 무너졌다.
그렇게 내 삶은,
기질에 맞지 않은 대학에서
기운 빠진 하루들을 살아가게 됐다.
그리고.
알게 된 아버지의 외도.
그토록 사랑하고 믿었던
내 아버지의 배신.
그래도 나는,
21살까지 아버지에게
생일 엽서를 받던 딸이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우리는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버지는 내 나이 서른하나에
당뇨 쇼크로 돌아가셨다.
아무런 사과도 없이.
그렇게 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임종은 내가 지켰다.
내 전애인과 함께
숨이 꺼져가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나는 괜찮아요.
옆에 든든한 사람도 있고,
이제 저는 저를 지킬 줄 알아요.”
그 말을 듣고
아버지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그 후.
결혼 상견례 자리에서
텅 빈 아버지의 자리를 보며
나는 그 부재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제야 알았다.
내 자존감,
내 근자감은
바로 그 사람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내 새끼가 최고지! 넌 뭐든 할 수 있어!” "여자라고 못할 거 하나 없다!"
늘 그렇게 말하던 아버지.
나는 늘
누군가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든든함 속에 자랐다.
그게 아버지였다.
그래서
더 미웠고,
더 그리웠다.
그래서 블랙은
‘죽음의 색’이었다.
그리고 ‘끝의 색’이었다.
그러다
나는 색채심리를 만났다.
그리고 블랙을 마주했다.
스에나가 하트앤컬러 이론은 말한다.
블랙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감정을 감추는 보호색’이라고.
‘무의식의 에너지’,
‘내면을 정리하고 멈추는 색’이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처음으로
검정색을 써보았다.
그리고.
울었다.
24년 나는 오랜 서울 생활을 접고 내 고향에 통영에 내려와
비로소 아버지를 용서했고
나를 껴안았다.
그리고 이젠 말할 수 있다.
검정은
나의 상처였지만,
지금은
나를 가장 빛나게 만드는 색이다.
이제 내 옷장엔 블랙이 가득하다.
블랙 머리띠도 한다.
이젠 검정이
‘멋쟁이의 색’으로
당당히 내 삶을 채운다.
검정은 죽음의 색이 아니었다.
검정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멈춤의 색이었다.
검정은 나를 지켜준,
내 마음의 마지막 방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방에서 나와
다시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색으로 내 감정을 표현해내는 데 있었다.
나는 내 기억 저편의 색과 감정과 마주한다
그리고 내 안에 문제를 직면한다.
그리고 색으로 풀어나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그 색과 친해진다
나의 검정은
그러했다.
그리고 현재 나는 검정과 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