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테라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이토 다카시의 <일류의 조건> 을 읽다
우연히 일본의 판화 대가인 무나카타 시코와 마주했다.
일본의 반고흐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그.
미친듯이 작품에만 몰두하던 그는
마침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 세계적인 판화의 거장이 된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이전에 있던 것을 내 스타일데로 재해석 하는 것이 창조일 것이다.'
하지만 난 좀 다른 관점에 관심을 두기로 했다.
'창조를 떠나 나는 화가들의 작품에서 내면의 외침'
색으로 터치로 느껴지는 그 은밀한 내면? 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
우연한 계기로
화가들의 아트테라피 시리즈를
일본의 반고흐라 불리었지만 독보적 세계의 거장이 된 무나카타 시코를 시작으로 한다.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 꿈을 품다
아오모리, 일본 북쪽 끝. 1903년, 무나카타 시코는 대장장이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5남매의 큰 가족, 늘 돈이 부족했던 집.
초등학교만 겨우 나온 그는 책 대신 연을 그리며 꿈을 키웠다.
어린 시코는 연에 그림을 그려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그의 손끝에서 바람이 춤췄고, 하늘이 웃었다.
17살, 운명의 순간이 왔다.
선생님이 건넨 반 고흐의 해바라기 복제화 한 장.
그 노란 꽃잎, 거친 붓질, 살아 숨 쉬는 빛.
“이게 예술이구나.”
시코의 가슴은 뛰었다.
“나도 아오모리의 반 고흐가 될 거야.”
그는 맹세했다. 그 맹세는 그의 삶을 뒤바꿨다.
가난한 소년, 흑백의 시인
1924년, 21살의 시코는 도쿄로 향했다.
유화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그는 구두를 고치고 낫토를 팔며 버텼다.
일본미술원 전시(Bunten)에 네 번이나 떨어졌다.
꿈은 멀었고, 배고픔은 가까웠다.
그러다 1926년, 또 한 번의 운명.
가와카미 스미오의 목판화 초여름의 산들바람을 보았다.
검은 선, 하얀 여백, 나무의 숨결.
“이거다.”
시코는 유화를 버리고 목판화를 택했다.
그는 나무에 칼을 댔다. 준비 스케치 없이, 맹렬히.
“마음이 가고, 도구가 홀로 걷는다.”
그의 말처럼, 그의 칼은 자유였다.
반 고흐의 영혼, 무나카타의 칼
무나카타는 왜 반 고흐를 사랑했을까?
반 고흐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예술의 불꽃을 피웠다.
무나카타도 그랬다.
그의 목판화는 반 고흐의 붓질처럼 대담하고, 거칠고, 살아 있었다.
검은 선은 힘찼고, 여백은 숨을 쉬었다.
그는 나무를 깎으며 자연의 영혼을 끌어냈다.
그는 반 고흐처럼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부처, 신토의 정령, 아오모리의 네부타 축제.
그의 그림엔 고향의 바람과 신앙의 떨림이 담겼다.
특히 부처의 열 제자(1939)는 그의 걸작.
나무판 위에 새겨진 부처의 얼굴은,
まるで 살아서 우리를 바라보는 듯했다.
민예 운동, 세계로 날다
1935년, 무나카타의 삶은 또 바뀌었다.
민예 운동의 아버지 야나기 소에츠가 그의 작품을 발견했다.
“이건 진짜 민중의 예술이야.”
야나기는 그의 야마토 시 우루와시 25점을 샀다.
그 순간, 무나카타는 민예 운동의 일원이 됐다.
그의 목판화는 일본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가 됐다.
1950년대, 그의 이름은 세계로 퍼졌다.
1952년 스위스 루가노, 195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195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1970년, 일본 정부는 그에게 문화훈장을 줬다.
가난했던 소년은 이제 “세계의 무나카타”였다.
하지만 그는 늘 말했다.
“나는 나무의 도구일 뿐, 예술은 자연이 만든다.”
고난의 그림자, 빛나는 영혼
무나카타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집과 작품이 잿더미가 됐다.
심지어 사랑하던 애완동물도 잃었다.
그는 도야마로 피신해 6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나무판을 깎으며, 다시 일어섰다.
그의 시력도 약해졌다.
목판을 깎을 때, 얼굴을 나무에 바짝 댔다.
그럼에도 그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칼은 영혼의 노래를 새겼다.
그는 말했다.
“내 눈은 흐려도, 마음은 본다.”
무나카타와 반 고흐, 영혼의 교감
무나카타는 반 고흐를 흉내 낸 게 아니었다.
그는 반 고흐의 열정을 품고, 자신만의 길을 갔다.
반 고흐가 캔버스에 색을 칠했다면,
무나카타는 나무에 칼을 댔다.
두 사람 모두, 예술로 삶을 불태웠다.
그의 묘비는 아오모리에 있다.
놀랍게도, 반 고흐의 묘비를 닮았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삶은 반 고흐와의 약속이었다.
“나도 너처럼, 세상을 사랑하며 그리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반 고흐
너무도 깊은 사랑의 화가, 그래서 나도 고흐를 사랑한다
무나카타도 그 깊은 사랑의 감정을 고흐의 그림에서 느낀 것이리라!
오늘, 무나카타에게 배우다
무나카타 시코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꿈을 좇는 자의 상징이다.
가난, 실패, 전쟁, 병마 속에서도
그는 나무를 깎으며 희망을 그렸다.
그의 목판화는 말한다.
“삶이 거칠어도, 너의 칼로 새겨라.”
그의 그림을 보자.
검은 선, 하얀 여백, 살아 숨 쉬는 자연.
그 속엔 아오모리의 바람이,
부처의 미소가,
그리고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있다.
무나카타 시코,
그는 일본의 반 고흐가 아니라,
세계의 무나카타였다.
색채, 삶의 거울
색은 단순한 빛이 아니다.
스에나가 타미오의 색채심리 테라피는 말한다.
노랑은 희망을, 파랑은 고요를, 검정은 깊은 상처를 품는다.
무나카타 시코와 반 고흐는 색과 선으로 영혼을 그렸다.
그들의 삶은 가난과 고독, 열정으로 얼룩졌다.
그들의 그림은 그 아픔을 치유로 바꿨다.
나무에 칼을 댄 무나카타, 캔버스에 물감을 뿌린 고흐.
그들의 색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너의 상처도 아름다울 수 있다.”
화가의 작품을 통해 들여다 본 내면에 대하여,
《부다의 열 제자》(1939): 침묵 속의 외침
검은 선, 하얀 여백.
목판 위에 새겨진 부처의 제자들.
그들의 얼굴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빛은 외친다.
1939년, 무나카타는 아직 젊었다.
아오모리에서 도쿄로 올라온 그는 배고픔과 싸웠다.
민예운동의 손길을 만나기 전,
그는 가난 속에서 나무를 깎았다.
검은 선은 그의 고통,
하얀 여백은 그의 희망이었다.
스에나가의 색채심리에서 검정은 깊은 내면이다.
고난, 억제, 때론 분노.
무나카타의 굵은 선은 그의 아픔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하얀 여백은 말한다.
“이 고통 속에도 평온이 있다.”
민예운동의 정신처럼,
그는 꾸밈없는 선으로 진실을 그렸다.
이 작품을 보며,
당신은 어떤 색을 떠올리는가?
마음이 무거울 때,
어떤 여백이 당신을 위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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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una from Ten Great Disciples of Buddha - Munakata Shikō - Google Arts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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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불》(1956): 몸에 새겨진 기억들
푸른 하늘, 붉은 흐름.
소년의 몸에 얼굴들이 새겨졌다.
그 얼굴들은 누구일까?
그의 기억, 그의 사람들, 그의 내면.
1956년, 무나카타는 세계로 날았다.
스위스 루가노, 상파울루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그의 이름은 빛났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고요를 찾았다.
민예운동의 뿌리에서,
그는 사람들의 삶을 예술로 끌어안았다.
스에나가의 색채심리에서 파랑은 고요와 보호다.
푸른 배경은 무나카타의 내면,
그가 갈구한 평온의 호수다.
붉은 갈색은 생명, 고통, 그리고 열정.
소년의 몸에 새겨진 얼굴들은
그가 품은 사람들, 그의 연민이다.
이 작품은 묻는다.
“너의 몸엔 어떤 얼굴이 새겨져 있니?”
가슴에 품은 기억들,
그것들은 어떤 색으로 빛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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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nt - Shikô, Munakata - Google Arts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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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1959): 나를 다시 낳다
환하게 웃는, 눈을 질끈 감은, 지그시 눈을 감고 평온을 느끼는
수많은 얼굴, 터져 나오는 감정.
출산은 아기가 아니라,
어쩌면 무나카타 자신이었다.
1959년, 그는 세계의 거장이 되었다.
가난한 아오모리 소년은 이제 빛났다.
하지만 그의 칼은 여전히 나무를 파고들었다.
그는 자신을 다시 낳고 있었다.
새로운 예술가, 새로운 자아.
스에나가의 색채심리에서
검정은 경계, 흰색은 새 시작이다.
다양한 얼굴들은 그의 내면,
그가 지나온 고통과 기쁨의 모자이크다.
이 작품은 단순한 출산이 아니다.
그것은 재탄생,
자신을 세상에 내놓는 용기다.
이 그림 앞에서,
당신은 어떤 얼굴을 보았나?
지금의 당신은 어떤 나를 낳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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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birth - Shikō Munakata (Japanese, b.1903, d.1975) - Google Arts & Culture
A devout Buddhist, Munakata Shiko combined inspiration from Buddhist scriptures with a love for folk art traditions to create his distinctive style. Sev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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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카타의 색, 우리의 치유
검정은 고통을, 파랑은 고요를,
흰색은 희망을 품는다.
무나카타 시코는 색과 선으로 말했다.
“삶이 아파도, 그 안엔 치유가 있다.”
민예운동의 심장은 그의 작품에 뛰었다.
꾸밈없는 선, 단순한 색.
그것은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의 내면이었다.
스에나가의 색채심리로 보면,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너의 색은 뭐니?
너의 마음은 지금 어떤 얼굴이니?”
당신의 마음에 색을 입히자
무나카타의 그림은 박물관에 있다.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아오모리 무나카타 시코 기념관.
Google Arts & Culture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캔버스 너머에 있다.
그것은 당신의 마음,
당신의 감정 속에 있다.
그의 흑백을 따라,
그의 파랑을 따라,
그의 얼굴들을 따라.
당신의 색을 찾아보자.
지금, 어떤 색이 당신을 부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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